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언론 보도

[2016.09.22. 오마이뉴스] 한 평 트럭에서 요리하고 주문받고... 이게 혁신이지
03.27.2017
2564 03.27.2017

 

[오마이뉴스 문하나 기자] 한 평 안에 담긴 무한의 가능성 찾기 

 

지난 8월 26일 오후 3시, 여의도 물빛광장. 도로를 따라 하나, 둘 트럭들이 들어선다. 저녁부터 시작될 '여의도밤도깨비야시장'의 푸드트럭들이다. 스테이크, 수제버거, 오꼬노미야끼, 팬케이크, 김치볶음밥까지 나라별 거리 음식들이 거의 다 모였다. 초록 야자수로 외벽을 시원하게 꾸민 <더 빅 아일랜드>도 '하와이안파인애플쉬림프'와 '알로하따봉주스'를 탑재했다. 

 

<더 빅 아일랜드>는 한 평 플랫폼으로 취약계층의 마이크로 창업을 돕는 사회공헌청년기업 '한 평의 꿈'의 정식 첫 플랫폼이다. 김민순 대표를 포함, 여덟 명의 스태프가 이날 <더 빅 아일랜드>에 오른다. 30여 개 푸드트럭들 사이에는 시작 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개성 넘치는 푸드트럭과 메뉴를 앞세워 저마다의 매력으로 사람들 끌 준비에 열을 올린다. 유독 뜨거운 여름의 무더위도 기세를 더한다. 절정의 여름 그 한 가운데, 꿈꾸는 청년들의 무대에 막이 오른다. 

 

 

창문 밖으로 뛰쳐나온 디자이너

 

다양한 아이디어 스케치들로 빼곡한 수첩. '한 평의 꿈' 푸드트럭을 비롯 그가 고안해낸 다양한 '한 평 플랫폼'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잘 그리는 디자이너는 아니라지만, 김 대표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한 숨은 고수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는 졸업 후 과감히 다시 펜과 종이를 잡았다. 결심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렸을 때,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할아버지와 손수 장난감을 만들었어요. 고장 난 VCR이 할아버지 손만 거치면 뚝딱 고쳐져 나왔죠. 행글라이더 대회도 덕분에 늘 1등이었고요. 대학에서도 발명대회니, 창업경진대회 같은 델 자주 나갔어요. 남들 따라가기보다 직접 만들고 도전하기를 즐겼죠. 

 

그러다 문득 책에서 무거운 물통에 밧줄을 달아 바닥에 쉽게 끌며 다닐 수 있도록 디자인된 사회적 제품을 봤어요. 물 부족 국가를 위한 아이디어 제품이었는데, '와, 이거다!' 싶었죠. 디자인이란 이런 거구나. 대학 졸업하고, 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디자인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영문학, 심리학, 기계공학, 건축학 같은 다양한 전공생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많이 배웠어요. 생활에서 디자인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찾고,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웠고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재활운동기구, 렌즈모양을 변형시켜 저렴하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메라까지... 민순 씨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대부분 취약계층이나 제3세계를 고려한 사회적 디자인이었다. 봉사활동을 했던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어차피 버려질 것들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되돌아가는 과정에 마음이 끌렸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인학교 졸업하고 일반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지만, 성취감은 적었어요. 디자인도 공부를 하고, 소위 무기를 쌓으며 해야 하는데, 프로젝트마다 동원되고 소진되는 기분이었어요. 

 

이용자들의 피드백도 받고 싶은데, 구조적으로 어려우니 답답했죠. 자연스레 '창업' 욕심이 생겼어요. 요식업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우연히 회사 근처에서 맛이 기가 막힌 츄러스 집을 발견했는데, 제가 보기에 노점 박스가 너무 못생긴 거예요. '제가 노점박스 예쁘게 디자인해 드릴 테니, 레시피 좀 알려 달라'고 사장님과 협상 아닌 협상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잘했다 싶죠.

  

마침, 아버지 농장에서 할 일 없이 놀고 있던 화물용 자동차가 있었어요. 화물칸이라고 해 봤자 한 평도 채 안 됐지만, 황학동에서 직접 자재 구하고 내부를 효율적으로 쓰도록 세밀히 디자인했죠. 

 

그때 가장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개시 첫날, 마치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공장에서 양산돼 나오는 것과 비슷한 성취감이 있더라고요. 푸드트럭이 너무 예쁘다고 '직접 만든 거 맞냐'고 물어보시기도 하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 찍어 SNS에 바로 올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피드백이 바로 오니 신기했죠. 어려움이 있었다면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불법'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 아마 저 같은 사람 많을 거예요. 하루 세 번 쫓기며 일했어요. 작년 '서울시 도시공원 1호 푸드트럭'으로 선정된 건, 100% 운이었어요. 갖고 있던 화물차가 합법 차량이 아니라 부랴부랴 합법으로 구조 변경된 중고차를 밤새 수소문해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나요. 들어가는 장비며, 배치 구조며, 새로 다시 짜고... 정말 힘들었어요. 고생도 많이 했고..."

 

손 안의 것들로 만들어내는 최선의 효과

 

민순씨는 청년들이 소자본으로 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한다. 지난 5월부터 그는 브리지협동조합과 함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창업 교육을 시작했다. 서울혁신파크 입주단체 <빅이슈> 판매원들도 대상 중 하나다. 연세는 많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들 모습으로부터 김 대표는 느끼는 것이 많다고. 

 

"푸드트럭을 3년 넘게 운영하면서 내가 고민했던 지점들을 잘 알려드리면, 취약계층도, 청년들도 더 쉽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현재로선 기회도 없고, 시작하려 해도 위험부담이 크니까. 그래서 사실, '한 평의 꿈'이 주력하는 것은 '푸드트럭'이 전부가 아니에요. 

 

'한 평 플랫폼'이죠. '플랫폼'은 모든 가능성이에요. 옥상에서 손님들에게 낙하산 샌드위치를 내려 보내는 '제플슈츠'란 가게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좁은 공간이지만 플랫폼을 창출한 거죠. 한 평 안에 담길 수 있는 아이템과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한 평 플랫폼을 함께 고민하는 게 우리 역할이에요. 

 

디자인 공부할 때 배운 것 중 하나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최선의 효과를 내는 것'이었거든요. 청년들이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면서 도전할 수 있는 '나만의 자원'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분명 있거든요. 아버지 농장에서 놀고 있던 제 작은 화물차처럼요."

 

얼굴에 장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청년들이 푸드트럭 위에 하나둘 오른다. 야자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듯 각자 위치를 찾아 간다. 담당할 재료를 점검하거나, 시선을 멀리 두어 오늘의 분위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야시장을 즐기러 온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긴 줄을 서기 시작한다. 

 

오후 5시 50분. 10분 카운트다운. 조명을 켜고, 불을 올려 프라이팬을 달군다. 재료들이 섞여 시처럼 자연스레 스미는 맛. 맛있는 냄새와 소리가 동시에 피어오른다. 여의도의 밤도 서서히 달아오른다.  

 

 

혁신가의 한 평

 

"2016년에 수동기어를 몰 줄 누가 알았겠어요? 서로 운전 안 하려고 막 미룬다니까요." 

 

민순씨가 웃으며 말한다. 구입한 중고트럭을 구석구석 개조해왔지만, 아직 변화의 여지는 무한하단다. 아이스박스 세 개와 입식 배너, 의자와 기타 집기들을 모두 빼낸 뒤 적재함 양 옆을 확장 레일을 따라 힘껏 밀면 좁았던 공간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푸드트럭 양 옆의 한 쪽은 손님들을 맞는 카운터가, 다른 한 쪽은 음식을 만드는 조리대가 설치됐다. 조리대는 스태프가 세 명, 많을 땐 네 명까지 맡아 새우와 고기를 굽는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카운터 쪽 역시 세 명이 담당한다. 한 사람은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들고, 한 사람은 주문을, 또 한 사람은 고체 치즈를 즉석에서 갈아 요리의 풍미를 돋운다. 

 

차 중앙과 계단으로 연결된 트럭 아래쪽에서는 부족한 재료들을 그때그때 채우고 더위에 지친 스태프들에게 차가운 음료나 간식을 적기에 전달해 기운을 북돋는 역할도 해야 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탓에 죽이 척척 맞는다. 오늘은 마침, 여행가방처럼 생긴 빨간 스피커의 첫 개시날이다. 좌석에서 스피커를 고이 내려 상태를 살피는 김 대표의 표정에 유쾌함이 넘친다.

 

문하나

 

기사직접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