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밤도깨비 야시장

언론 보도

[2017.04.20. 한겨레] 멋과 맛, 희망과 즐거움을 팝니다
07.14.2017
2215 07.14.2017

[한겨레 윤승일 기자] “정말 걱정을 없애주나요?”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진지했다. “걱정이 뭐야?” 노란 천막 안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안세연(27)씨의 표정 역시 진지하다. 둘 사이에 놓인 1㎡가량의 판매대에는 손가락만 한 크기의 ‘한지 걱정인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2017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이 열리는 토요일(15일) 저녁, 반포대교 아래 달빛광장 풍경은 색달랐다. 안씨와 같은 판매자(셀러)들을 위한 노란 천막. 케밥, 스테이크, 떡볶이, 피자…. 30대의 푸드트럭은 가지각색의 외관만큼이나 다양한 메뉴로 시민들이 긴 줄 서기를 마다치 않게 했다. 푸드트럭 주인들은 요리를 하면서도 포즈를 잡거나 즉석 이벤트로 시민들의 지루함을 덜어주려 애를 썼다.
“저요? 전 아르바이트예요. 사장님은 요리하시는 두 분이에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선 푸드트럭 ‘S.W.A.T’(Special dishes With Awesome Team) 판매대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시민들을 보고 포즈를 잡던 심동현(27)씨는 이날 처음 함께한다고 했다.

S.W.A.T는 김영현(29), 김예찬(26)씨가 함께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식당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만났다. “즐거운 일을 해보자”며 시작한 게 푸드트럭이다.
주요 메뉴인 오리고기볶음과 오리고기볶음밥은 20년 넘게 오리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영현씨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아마 오늘 최고 매출을 기록할 것 같아요.” 손을 잠시도 쉬지 않는 영현씨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에 참여하는 푸드트럭은 서류심사와 시식회를 거쳐 엄선된 푸드트럭들이다. 메뉴가 겹치지 않아야 하며, 위생에도 철저해야 한다. 입점을 위한 경쟁률이 3 대 1이 넘었다고 한다.

음식을 받아든 시민들은 달빛광장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보다는 한강 변과 잔디밭을 선호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는 맛은 달빛광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풍선도깨비가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때맞춰 중앙무대에선 인디밴드 ‘변화무쌍’의 노래가 들려왔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도깨비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도깨비 앞에 선 아이가 따라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

천막에 전등이 켜지자 광장의 천막은 마치 노란 봄꽃처럼 빛났다. ‘봄이네’라는 간판을 내건 천막. 판매대의 반려견용 옷과 리본, 목줄에 시민들의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솜씨의 주인은 김형미(57)씨. “우리 아이들 옷을 만들던 게 부업이 된 셈이에요.” 김씨는 직접 만든 반려견용 옷으로 밤도깨비야시장에 참여한 게 벌써 3년째다. “엄마예요. 전 아르바이트인 셈이에요.” 김씨를 돕는 손윤경(31)씨의 웃음이 볕 좋은 봄날 한강의 초록빛만큼이나 환하다.
37개의 노란 천막에서 팔고 있는 제품들은 시중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반지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와 향수, 가죽제품, 향초 등 판매 제품 대부분은 천막 주인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다. 밤도깨비야시장에 나선 판매자들은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에서 공예작가, 가족 등 다양하다. 걱정인형을 파는 안씨는 대학에서 한지 조형을 전공한 인형작가다. 독일에서 열리는 공예전에 출품하기도 했다는 안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꿈꾸고 있다.

직접 만든 가죽 제품을 들고 나온 김민호(35)씨의 천막 앞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김씨는 현장에서 이름을 새겨주는 서비스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건축을 전공한 김씨의 꿈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건축은 꿈이에요. 현실이 아니지요. 건축은 플랜 비(B)입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룬 뒤 자신의 꿈을 이뤄가겠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시장’은 자신의 가게를 갖지 못한 상인들이 밤이나 새벽에 모였다가 날이 밝으면 사라지는 시장을 이르던 말이다. 희망으로 시작하는 청년들과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서울밤도깨비야시장은 10월29일까지 여의도, 반포,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계속된다.

 

윤승일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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